나가르주나, 월터 러셀, 그리고 윤홍식의 천상 문답
[등장인물]
- 나가르주나 (용수, 龍樹): 대승불교의 아버지이자 중관학의 개조. 일체의 자성(自性)과 실체론을 해체하는 서슬 퍼런 논리의 칼날을 지녔으나, 그 바탕에는 일체중생에 대한 깊은 자비심을 품고 있다.
- 월터 러셀 (Walter Russell):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 조각가이자 사상가. 우주를 '부동의 자성광'과'운동하는 분극 전기광'의 파동 역학으로 통찰했다.
- 윤홍식: 홍익학당 대표. 양심(良心)과 순수의식인 ‘참나’의 회복을 통한 대승적 보살행을 지상에서 열정적으로 설파해 온 사상가.
S#1. 부동(不動)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 — 우주의 영점(Zero Point)
[프롤로그]
깊은 삼매(三昧) 혹은 꿈의 경계. 지상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진리를 향한 의식들이 교차하는 어느 지점.
인류는 수천 년간 고정된 '실체(實體)'를 붙잡으려 피를 흘렸고, 무언가를 점유하려는 에고(Ego)의 중력에 짓눌려 고통받아 왔다.
하지만 이 우주에는 어떠한 전자기적 파동도 요동치지 않고, 원근도, 무게도, 시간의 흐름조차 미치지 못하는 절대의 정적(Stillness)—모든 운동이 시작되고 멈추는 '영점(Zero Point)'이 존재한다.
(장면이 서서히 밝아지면)
저 멀리 허공에는 은하와 항성들이 압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나선형의 빛을 뿜어내는 '운동하는 전기의 빛(Electric Lights in Motion)'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우주적 파동의 중심 축이자 지렛목(Fulcrum)이 되는 순수한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의 자리에 두 사람이 서 있다.
한 사람은 1,800년 전 언어의 칼날로 지상의 모든 실체론을 베어냈던 인도의 수행자 나가르주나(용수, 龍樹).
다른 한 사람은 20세기, 우주의 율동과 빛의 기하학을 밝혀낸 서양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 월터 러셀(Walter Russell)이다.
가사(袈裟)를 단정히 수한 나가르주나와 온화한 풍모의 월터 러셀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깊은 침묵 끝에, 러셀이 먼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러셀
(허공의 파동치는 빛들을 바라보며)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지상에서는 당신의 '공(空)'을 두고 세상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Nothingness)에 불과하다며 길을 잃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빛의 주기 속에서 목격한 우주는 당신의 통찰 그대로였습니다. 인간들이 '단단한 물질'이라 믿었던 원자, 금속, 별들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된 알갱이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압축과 팽창을 끝없이 거듭하는 '운동하는 전기의 빛(Electric Lights in Motion)'에 불과했습니다.
나가르주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러셀 선생, 당신이 물질의 환영을 벗겨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 옥타브와 파동의 기하학을 정립할 때, 나는 천팔백 년 전 아비달마(부파불교)의 학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법(Dharma)에 영원불변의 고유한 성질, 즉 자성(自性, Svabhāva)이 실재한다고 믿었지요. 나를 부정하면서 물질과 마음의 실체를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러셀
그렇다면 그들에게 변화는 불가능한 모순이었겠군요. 고정된 알갱이가 있다면 변화는 불가능한 모순이 되지 않습니까.
나가르주나
바로 그렇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사물에 독립적인 자성이 있다면, 싹은 어떻게 씨앗에서 나오며, 얼음은 어떻게 물이 되는가? 독립된 실체는 변할 수 없고, 변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생겨날 수도 없음을 나는 논리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러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결코 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내가 '리듬 있는 균형적 교환(Rhythmic Balanced Interchange)'이라 불렀던 법칙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력에 의한 압축(Generation)은 방사(Radiation)라는 짝 없이는 단 1초도 유지될 수 없고, 열은 냉기를 조건 삼아 태어나며, 남성은 여성을 통해서만 정의됩니다. 파동의 모든 마루는 골짜기에 의존하고, 양전하는 음전하를 마주 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어느 하나도 독립된 본질을 쥐고 있지 않으며, 오직 반대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나가르주나
그것이 바로 세속의 언어로 연기(緣起)이며, 실체적 시각에서 보면 무자성(無自性), 즉 공(空)입니다. 긴 막대가 있으려면 짧은 막대가 비교 대상으로 서 있어야 하듯, 일체의 현상은 상호 의존에 의해 임시로 이름 붙여진 가립(假立)에 불과합니다. 선생께서 보신 전기의 대립물들 역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건 삼아 나타나는 것이니, 그물코처럼 얽힌 연기의 움직임을 물리학의 눈으로 정확히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나가르주나의 눈빛이 특유의 예리함을 띠며 러셀을 응시한다. 논쟁의 거장다운 서늘하고도 맑은 물음이다.)
나가르주나
그런데 러셀 선생, 당신의 저작을 보면 온 우주의 파동을 통합하고 지배하는 중심, 모든 움직임의 원천으로서의 'Still Magnetic Light(부동의 자성광)'과 'One Mind(한마음)'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지렛목(Fulcrum)이 되는 그 영점(Zero Point)을 두고 사람들은 또다시 하나의 절대적인 신(神)이나 영원불멸의 궁극적 실체를 상상하곤 합니다. 브라만(Brahman)이나 아트만(Atman)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가리킨 그 중심 또한 '붙잡아야 할 불변의 실체'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파동이라는 운동에 기대어 세워진 또 다른 집착이 아닙니까?
러셀
(잔잔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맑게 미소 지으며)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용수여. 하지만 내가 말한 '영점'은 무언가 만져지거나 점유할 수 있는 '어떤 대상(Thing)'이 아닙니다. 파동이 압축의 극점에 도달했다가 다시 팽창하여 본래로 돌아갈 때, 그곳에는 어떤 형태도, 무게도, 전하도 남지 않습니다.
(러셀이 두 손으로 허공에 시소를 그리며 설명한다.)
러셀
시소의 중심에 놓인 지렛목은 스스로 오르내리지 않기에 양쪽의 운동을 성립시킵니다. 그 지렛목 자체가 또 다른 무게를 가지고 널뛰기를 시작한다면 온 우주의 균형은 즉시 무너지고 맙니다. 나의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은 운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실체적 물건이 아니라, 일체의 대립과 움직임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어 멈추어 있는 순수한 균형, 즉 우주의 영점(Zero Point)입니다. 그것은 비추려 하지 않기에 빛나고, 소유하려 하지 않기에 온전합니다.
나가르주나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과연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기하학의 영점과 침묵의 지렛목으로 설명하셨군요. 우리가 승의제(勝義諦)라 부르는 진실, 즉 모든 상대적 조건과 분별의 언어가 멈추어 선 그 자리를 가리킨 것입니다. 내가 《중론》에서 생겨남도 아니고 사라짐도 아니며, 영원함도 아니고 끊어짐도 아니라고 여덟 가지로 부정한(八不) 까닭도, 존재와 비존재의 양극단을 떠난 그 고요한 중도(中道)를 가리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생의 '자기적 빛'이 운동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영점이라면, 그것은 내가 '공(Śūnyatā)'이라 불렀던 것과 이름만 다른 하나의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있다'는 생각에 떨어지면 영원주의의 늪에 빠지고, '없다'는 생각에 떨어지면 허무주의에 베이지만, 그 영점에는 유(有)도 무(無)도 발붙일 곳이 없지요.
러셀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형태를 쥔 채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지혜로운 자는 형상이 단지 주기(Cycle) 속에서 잠시 굽이치는 파동임을 압니다. 생명은 죽음으로 팽창하고, 죽음은 다시 생명으로 압축됩니다. 그러니 삶에 집착할 것도,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주의 위대한 리듬 속에서 온전히 ‘주고 되주는(Giving and Regiving)’ 균형을 배울 뿐이지요.
나가르주나
(허공에서 회전하는 거대한 은하들을 가리키며)
선생께서는 우주의 구조를 정밀한 파동의 기하학과 도표로 그려 보여주셨고, 나는 사람들이 쥐고 있는 망상의 올가미를 논리의 칼날로 베어냈습니다. 방법은 달랐으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그 완고한 '나', '내 소유', '불변의 물질'이라는 환상을 놓아주기만 한다면, 이 춤추는 파동 전체가 그대로 해탈의 바다요, 연기의 신비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말입니다.
러셀
(깊은 시선으로 우주의 율동을 바라보며 나직이)
놓아줄 때 비로소 전체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 거대한 정적 속에서, 우주가 스스로 연주하는 빛의 율동에 맞춰 온전히 공명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속삭여 주었을 뿐입니다.
S#2. 부동의 찻자리 — 칼날과 거울의 해원(解冤)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나선형의 은하들이 서서히 빛의 입자로 흩어지며 공간이 아늑하게 압축된다.
빛이 사그라든 고요한 허공의 한가운데, 소박한 다상(茶床) 하나가 놓여 있다.
방금 전까지 우주의 율동을 논하던 나가르주나와 러셀이 그 앞에 마주 앉는다. 백자 찻잔에서 맑은 차향이 은은한 김을 피워 올린다.
두 사람이 찻잔을 들려던 찰나, 저편 허공을 지나치며 바쁜 걸음을 옮기는 한 사내가 보인다. 개량한복 차림에 특유의 열정적이고 결기 어린 눈빛을 한 윤홍식이다.
그가 옆을 스쳐 지나가려 하자, 나가르주나가 온화한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나가르주나
윤 선생,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십니까? 여기 맑은 찻물이 잘 우러났으니,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나 한 잔 나누고 가시지요.
(윤홍식, 뜻밖의 부름에 멈춰 선다. 고개를 돌려 나가르주나를 확인하는 순간, 눈이 동그래지며 마른침을 삼킨다. 지상에서 수없이 '용수의 칼날'과 '후학들의 악취공'을 거칠게 비판했던 기억이 스치며, 얼굴에 멋쩍은 기색이 역력하다.)
윤홍식
(뒷머리를 긁적이며, 멎쩍은 웃음)
아…… 용수 보살님 아니십니까? 저, 저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제가 감히 용수 보살님과 겸상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곁에 앉은 낯선 서양인을 보고 조심스럽게) 아, 옆에 계신 분은 제가 초면인 것 같은데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나가르주나
(부드럽게 손짓하며 빈 방석을 가리킨다)
우주의 영점에는 높은 이도 낮은 이도 없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인사 나누십시오. 이쪽은 우주의 율동과 빛의 기하학을 밝혀낸 월터 러셀 선생입니다.
윤홍식
(놀라며 정중히 목례한다)
아, 서양의 학자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윤홍식이라 합니다.
러셀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찻잔 하나를 내려놓는다)
어서 오십시오, 윤 선생. 나는 천상에서 지상의 기록을 통해 선생의 훌륭한 족적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주의 영점에는 낯선 이도, 처음과 끝도 없으니 편히 자리를 함께하시지요.
(윤홍식, 낯선 서양 철학자의 환대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다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가르주나가 찻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 건넨다.)
나가르주나
(차를 건네며 엷은 미소를 띤다)
지상에서 나를 향해 꽤나 매서운 화살을 여러 번 쏘셨다고 들었습니다.
윤홍식
(뜨끔하여 두 손으로 찻잔을 받쳐 들고 진땀을 흘리며)
아…… 용수 보살님, 면전에서 참으로 송구합니다만, 지상에 계신 용수 보살님의 후학들이 벌이는 그 공허한 말장난과 악취공(惡取空)에 하도 속이 터지다 보니, 때로는 화살의 촉이 용수 보살님 본인을 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가르주나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잔잔하게)
허허, 송구할 것 없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처방한 약이 도리어 독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처방전을 쓴 의원에게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지요. 윤 선생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떠했기에 그리도 화살을 당기셨습니까?
(나가르주나의 허물없는 태도에 윤홍식의 눈빛이 특유의 결기 어린 사명감으로 다시 불타오른다.)
윤홍식
(정면으로 응시하며 간곡하고 직설적으로)
용수 보살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용수 보살님의 파사(破邪)의 칼날은 참으로 서슬 퍼렇고 정밀했습니다. 하지만 용수 보살님께서는 파괴만 하셨지,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를 온전히 세워주지(顯正)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실체가 없고 공하다고 다 쳐내버리시니, 후학들은 '나도 없고 법도 없다'며 멍하니 앉아 허무주의에 취해버렸습니다. 배를 띄워야 할 바다까지 통째로 말려버리신 것 아닙니까?
인간의 내면에는 시공을 초월해 우주를 주재하는 불멸의 순수의식, 즉 '참나'가 엄연히 실재합니다. 이 텅 빈 자리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자비와 양심을 뿜어내는 생생한 우주의 본체가 있는데, 그것마저 '자성이 없어 공하다'고 쳐내버리시니 보살도의 심장인 '양심'의 뿌리가 뽑혀버린 것입니다!
나가르주나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깊은 자비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윤 선생, 그대가 지상에서 뭇 중생들의 메마른 삶과 타락한 도덕을 보며 얼마나 애가 탔을지, 그 보살심이 내 마음에 절절히 전해져 옵니다. 그러나 한 번만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제가 살았던 2세기 당시의 인도는 어떠했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영원한 자아(아트만)'와 '우주의 본체(브라만)'를 부르짖으며 그것을 특권의 성벽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입으로는 신과 본체를 말하면서 계급을 나누고 탐욕을 정당화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때 그대의 말처럼 '참나'라는 긍정의 깃발을 또다시 그들 손에 쥐여주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윤홍식
……!
나가르주나
그들은 틀림없이 그 '참나'를 붙잡아 또 하나의 거대한 '신성한 에고'를 축조했을 것입니다. "내 안에 참나가 있으니 나는 특별하다", "너는 참나를 모르니 미천하다"며 끝없는 분별과 오만을 낳았을 테지요. 내가 온갖 주장을 부수며 끝내 '아무것도 세우지 않은(無立場)' 까닭은, 마음이 쉴 곳을 찾아 또다시 기댈 언덕을 만드는 그 집착의 덫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윤홍식
(충격을 받은 듯 눈을 깜빡이다가)
용수 보살님, 그렇다면…… 그 자리를 아주 없다고 부정한 것은 아니셨습니까?
나가르주나
나는 결코 그 자리를 단멸(斷滅)이라 하여 지워버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무한한 바탕을 '참나'라는 이름의 실체로 움켜쥐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생생한 본심이 아니라 에고가 빚어낸 또 하나의 우상(자성)으로 굳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언어와 분별을 베어내는 적멸(寂滅)만이 그 자리를 온전히 가리킬 수 있었을 뿐이지요. 거울에 낀 먼지를 맹렬히 닦아내다 보니(破邪), 어떤 이들은 아예 거울마저 깨부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모든 것이 허무하다며 길을 잃거나, 인과마저 부정하는 방종으로 굴러떨어진 것이지요.
윤홍식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탄식을 뱉는다)
아…… 용수 보살님의 칼날은 본체를 죽인 것이 아니라, 본체에 달라붙은 인간의 온갖 관념적 때를 베어내신 것이었군요. 제 시야가 좁아 보살님의 깊은 방편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S#3. 파동의 기하학과 자명(自明)의 우주물리학
그때까지 조용히 찻잔을 매만지며 미소 짓고 있던 월터 러셀이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그의 눈빛에는 형상의 이면에 감춰진 우주의 율동을 꿰뚫어 보는 노학자 특유의 명징함이 서려 있다.
러셀
두 분의 문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윤 선생, 지상의 기록을 보니 선생께서는 참나의 소리이자 보살도의 잣대로 ‘자명(自明)함’과 ‘찜찜함’을 평생의 나침반으로 삼으셨더군요.
윤홍식
(러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러셀 선생님. 인간의 이성과 언어는 늘 자기합리화에 능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를 대도 본심(참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에 부합하면 가슴이 탁 트이며 '자명'하고, 탐진치에 휘둘려 어긋나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찜찜'합니다. 이 감각이야말로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가장 확실한 잣대입니다.
러셀
(빙그레 웃으며 찻잔을 다상 위에 내려놓는다)
하지만 지상의 학자들과 회의론자들은 그 지점을 가장 가혹하게 공격하지 않던가요? "그 '자명-찜찜'이란 결국 한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문화적 관습, 혹은 심리적 편향에 불과한 원시적 느낌 아니냐. 네가 시원하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게 우주적 객관성을 지닌 진리가 될 수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윤홍식
(답답함을 토로하듯 찻잔을 쥐며)
맞습니다! 러셀 선생님! 그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화살이 바로 그겁니다.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순수의식의 직관을, 에고의 감정 찌꺼기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말과 글로 완벽히 증명해 보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러셀
그것은 선생의 직관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직관을 물리학으로 번역해 줄 ‘빛과 파동의 역학 및 우주의 기하학’을 손에 쥐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러셀이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허공을 가르자, 정적의 공간 위에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옥타브 파동(Octave Wave)과 원추형 나선(Conical Spiral)이 홀로그램처럼 입체적으로 피어오른다.)
러셀
윤 선생, 우주의 모든 현상은 전기적 파동입니다. 그리고 그 파동의 중심에는 어떠한 전하도, 편향도 없는 '부동의 자기적 영점(Still Magnetic Zero Point)'이 지렛목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러셀이 나선의 중심과 파동의 정점을 가리킨다.)
러셀
우리가 말하는 ‘양심’이나 ‘인의예지’는 인간이 지어낸 도덕률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 영점의 균형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듬 있는 균형적 교환(Rhythmic Balanced Interchange)'의 물리학입니다. 중력이 응축하여 물질을 생성하면, 방사는 정확히 같은 힘으로 그것을 우주에 주고 되주어야(Giving and Regiving) 합니다. 1의 오차도 없이 이 대칭적 균형이 맞물릴 때, 파동은 완전한 90도의 위상을 이루며 영점과 완벽하게 공명(In-phase Resonance)합니다.
윤홍식
(눈을 크게 뜨며 허공의 기하학적 도형에 몰입한다)
위상의 일치…… 영점과의 공명……!
러셀
선생께서 말씀하신 ‘자명(自明)’의 정체가 바로 이겁니다. 내 행위와 생각이 우주의 영점이 요구하는 완벽한 기하학적 균형(Balance)과 일치할 때, 내 안의 전기적 파동체는 지렛목과 정확히 같은 진동수로 조율(Tuned)됩니다. 이때 에고의 저항(Resistance)이 '0'으로 떨어지며 우주의 전체 에너지가 막힘없이 관통합니다. 가슴이 뚫리듯 시원한 것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시스템 내부의 전기적 단락(Short)이 사라지고 초전도 상태처럼 영점의 빛이 왜곡 없이 흐르는 실제적 물리 현상입니다!
윤홍식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내지른다)
아……! 러셀 선생님, '자명'이란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참나라는 영점과 내 에고의 파동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중첩되는 공명(Resonance)이었군요!
러셀
그렇다면 ‘찜찜함’은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에게서 빼앗으려 하거나(Taking), ‘주고 되주(Giving and Regiving)’는 균형을 깨뜨려 한쪽으로 과도하게 압축하려 할 때, 파동은 중심축에서 빗겨나 일그러집니다(Out-of-phase). 이것이 전자기적 불균형(Unbalance)이자 비대칭적 저항입니다.
(러셀이 홀로그램 속 파동의 축을 살짝 비틀자, 조화롭던 빛의 나선이 마찰을 일으키며 붉은 노이즈를 뿜어낸다.)
러셀
이때 생기는 저항과 위상차의 파열음이 인간의 신경계와 가슴에 전자기적 마찰력으로 감지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선생이 느끼셨던 ‘찜찜함’의 물리적 실체입니다. 우주가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지요. "네 파동이 지금 영점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불균형의 파열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윤홍식
(온몸에 전율이 인 듯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경이롭습니다, 러셀 선생님!
저항이 ‘0’인 상태가 자명이고, 위상이 어긋난 전자기적 마찰이 찜찜함이었다니……!
제가 그토록 외쳐왔던 '양심(良心)'의 소리가 단순한 도덕적 감정이나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내 에고의 파동이 우주 영점의 균형과 어긋나고 있음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가장 정밀한 물리학적 경고음이었군요!
나가르주나
(두 사람의 대화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찻잔을 든다)
허허, 러셀 선생이 마침내 윤 선생의 가슴에 맺혀 있던 마지막 의문까지 시원하게 뚫어주셨군요.
(나가르주나가 윤홍식을 부드럽게 바라본다.)
나가르주나
윤 선생, 이제 한눈에 꿰어지십니까?
내가 자성을 부정하고 '공(空)'을 말했던 것은 저 영점에 에고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텅 비워내기 위함이었고, 러셀 선생이 '부동의 빛'을 말한 것은 그 비워진 자리가 결코 허무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파동을 조율하는 절대적 지렛목임을 밝히기 위함이었으며, 선생께서 '자명과 찜찜'을 외친 것은 인간이 매 순간 그 영점의 율동에 정확히 동조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신호등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윤홍식
(두 거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깊이 고개를 숙인다)
용수 보살님, 그리고 러셀 선생님. 오늘에야말로 제 평생의 화두였던 '자명'이 비로소 가장 객관적이고 거대한 우주의 질서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저의 직관은 원시적이지 않았고, 방금 눈앞에서 확인한 우주의 기하학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지상의 어떤 회의론자가 와서 시비를 건다 해도, 저는 저 허공의 빛과 파동을 들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명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다.
나가르주나
허허, 말이 길어지면 텅 빈 자리에 또다시 언어의 먼지가 앉는 법입니다. 자, 무거운 화두는 다 내려놓았으니 이제 맑은 차 한 잔 시원하게 비우시지요.
(세 사람이 동시에 찻잔을 들어 올린다. 맑고 청아한 도자기의 파열음이 영점의 침묵을 울린다. 윤홍식이 찻잔을 단숨에 비워내자, 그의 얼굴에 티 없는 환희가 깃든다.)
윤홍식
(환하게 웃으며 허공을 향해)
아! 참으로 찜찜함 한 점 없이, 시원하게 자명합니다!
S#4. 침묵의 귀로 — 삼일(三一)과 이오(二五)의 매트릭스, 그리고 참칭된 중심
비워진 백자 찻잔에서 마지막 온기가 맑게 피어오르고 있다.
윤홍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르주나를 향해 옷깃을 여미고 깊이 허리를 숙여 삼배(三拜)를 올린다. 나가르주나는 합장한 채 인자한 미소로 그를 맞받는다.
윤홍식
(지극한 감사와 존경을 담아)
용수 보살님, 오늘 보살님께서 베풀어주신 차 한 잔과 파사(破邪)의 참뜻은 제 평생의 묵은 체증을 일시에 씻어주셨습니다. 그 무자비했던 칼날이 실은 중생의 우상을 베어내기 위한 지극한 자비였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가르주나
(온화하게 손을 들어 윤홍식을 일으켜 세우며)
윤 선생, 칼날을 쥔 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칼끝이 닿는 자리의 평화입니다. 그대가 지상에서 밝히는 ‘자명의 등불’이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뭇 중생들에게 따뜻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러셀 선생과 함께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러셀
(나가르주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스승이시여, 영점의 적멸 속에서 나눈 문답을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가르주나
(두 사람을 배웅하며 잔잔한 음성으로)
길 위에 일어나는 모든 바람과 파도를 온전히 누리십시오.
(나가르주나가 찻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온화한 배웅을 보낸다.
윤홍식과 월터 러셀이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려,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허공에 미세한 빛의 동심원이 퍼져나가며 은은한 공명을 일으킨다.
잠시 말없이 걷던 윤홍식이 찻자리에서 미처 다 묻지 못했던 화두를 꺼내며 러셀을 돌아본다.)
윤홍식
러셀 선생님, 용수 보살님과 인사를 나누고 발을 떼니 비로소 머릿속의 점들이 선명한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아까 차를 마시며 보여주신 파동의 기하학을 되새길수록 온몸에 전율이 돋습니다.
하지만 지상에서 늘 저를 괴롭혔던 의문이 하나 남습니다. 우주의 근원(영점)은 분명 하나인데, 어째서 현실의 삶은 이토록 끊임없이 갈라지고 부딪히며 고통스러운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러셀
(발걸음을 맞추며 고요히 미소 짓는다)
바로 그 지점이 내 우주존재론의 출발점입니다, 윤 선생.
우주의 본바탕은 오직 하나의 빛이지만, 그 빛이 작동하는 방식은 명확히 둘로 나뉘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것을 ‘두 가지 빛의 마음’이라 부릅니다.
윤홍식
두 가지 빛의 마음이라니요?
러셀
하나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이며, 이는 우주의 유일한 실재이자 거울처럼 비추는 순수한 알아차림, 즉 '영지(靈知, Mind Knowing)'입니다.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할 수 있죠.
다른 하나는 그 영점의 중심에서 뻗어나와 팽창과 수축, 양극과 음극으로 갈라져 끊임없이 파동치는 ‘움직이는 분극 전기광(Divided Moving Electric Lights)’이니, 이것이 바로 만물을 쪼개고 헤아려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는 에고의 마음, 즉 '사량 분별(思量分別, Mind Thinking)'입니다. '분별식(分別識)'인 것이죠.
윤홍식
(눈이 번쩍 뜨이며 벼락을 맞은 듯 두 손을 마주친다)
바로 그겁니다, 러셀 선생님! 서양 물리학의 정수가 동방의 오랜 비전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포개지는군요!
선생님께서 가리키신 그 영점의 ‘알아차림(Mind Knowing)’이야말로 불가(佛家)에서 그토록 외쳐온 ‘공적영지(空寂靈知)’요, 유가(儒家)에서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마음의 본체 ‘허령지각(虛靈知覺)’ 아닙니까!
(윤홍식,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추며 러셀을 똑바로 응시한다)
윤홍식
용수 보살님의 '공(空)'이 ‘분별식(Mind Thinking)이 완전히 끊어진 절대적 무분별지(Mind Knowing)의 자리’라면, 러셀 선생님의 '부동의 자성광' 역시 그 텅 빈 영점(Zero)에서 영롱하게 깨어 있는 '순수한 알아차림' 그 자체입니다!
텅 비어 있기에(眞空) 오히려 만물의 파동(분별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추어 내니, 이것이 곧 대승의 정수인 ‘진공묘유(眞空妙有)’요,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석삼극 무진본(析三極 無盡本)’이며, 《삼일신고》의 ‘집일개삼(執一開三)·회삼귀일(會三歸一)’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러셀
(깊이 감응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윤 선생. 나는 천상에서 동방의 배달족 성인들이 남긴 그 웅장한 비전이 나의 파동 역학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음을 늘 경이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의 빛의 기하학과 배달족이 남긴 《천부경》의 수리학(數理學)이 이토록 완벽히 일치하는 이유는, 형태(기하)와 숫자(수리)라는 언어만 다를 뿐 둘 다 우주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고요한 영점(1)에서 대칭적으로 피어나는 파동(3)의 구조, 곧 ‘삼일(三一)’의 율려(律呂) 말입니다.
그런데 윤 선생, 나는 그 온전한 ‘삼일(三一)’의 궤적이 지상의 역사 속에서 끊어지는 참으로 기묘하고도 참혹한 비극을 보았습니다. 동방의 진리가 그 순수한 수리와 기하학의 궤도를 잃어버리고, 누군가에 의해 강제된 인위적인 ‘이오(二五)’의 매트릭스로 추락해버린 사건 말입니다.
윤홍식
(흠칫 놀라며)
강제된 이오(二五)의 매트릭스라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러셀
그렇습니다. 요순(堯舜)의 후예들, 그대들의 중화권 형제들은 어느 순간 영점의 지렛목인 '초월적 하나(一)'를 잃어버렸습니다. 바탕이 되는 영점이 사라지니, 우주는 그저 끝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는 파편화된 '둘(음양)'의 전쟁터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그들은 이 통제 불능의 갈등을 억지로 꿰맞추어 지배하기 위해 '다섯(오행)'이라는 인위적인 권력의 굴레를 씌웠습니다.
(러셀이 허공에 손을 얹자,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 모양의 역학 구조가 투영된다.)
러셀
파동 역학에서 이 기하학의 정중앙, 즉 숫자 ‘5’의 자리는 사방(四方)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스스로를 텅 비워두어야 하는 바퀴통(Hub)입니다. 노자가 말한 '바퀴통이 비어 있어야 수레의 쓰임이 생겨난다(當其無, 有車之用)'의 이치와 같으며, 이처럼 중심을 비우고 율려를 대행하는 수평적 삶이 바로 그대들의 옛 기록이 말하는 ‘천웅지도(天雄之道)’입니다.
(러셀이 손짓하자, 투명하게 비어 있던 바퀴의 중심축 '5'의 자리에 검고 무거운 질량 덩어리가 들어차며 바퀴 전체가 끔찍한 굉음과 함께 뒤틀리기 시작한다.)
러셀
자, 보십시오. 비어 있어야 할 회전축이 스스로 거대한 권력과 질량을 쥔 채 고정된 덩어리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윤홍식
(일그러지는 홀로그램을 보며)
축과 바퀴살 사이에 마찰열이 발생하고... 바퀴 전체가 산산조각이 납니다.
러셀
중화의 지배자였던 요(堯, 요임금)가 저지른 짓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결코 누구도 차지해서는 안 되는 텅 빈 영점(Zero), 저 '5'의 자리에 스스로를 쑤셔 넣었습니다. "내가 곧 세상의 유일한 중심이자 황극(皇極)이다"라며 중심을 참칭(僭稱)해버린 것이지요.
수평적으로 ‘주고 되주던(Giving and Regiving)’ 순수한 ‘삼일(三一)’의 우주적 질서는 그렇게,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사방의 만물을 짓밟고 지배하는 억압과 통제의 제왕지도로 타락해버렸습니다.
(홀로그램 속 검고 뒤틀린 고대의 바퀴축 위로, 서서히 현대 지상의 수많은 붉은 마이너스 기호와 디지털 장부,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의 이미지가 겹쳐 흐른다.)
윤홍식
(눈앞의 섬뜩한 시각적 변환에 굳어버리며)
저, 저건... 오늘날의 화폐 시스템 아닙니까!
러셀
그렇습니다, 윤 선생. 요(堯)가 세운 그 거짓된 이오(二五)의 매트릭스는 결코 고대의 무덤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본래 텅 비어 있어야 할 5의 자리에, 오늘날 그들은 '중앙은행'을 세웠습니다. 만인이 저마다의 영점(참나)에서 뿜어내야 할 우주적 발권력과 주권을 소수가 독점해버린 것이지요.
윤홍식
(망연자실하여 탄식한다)
아... 이자와 독점이라는 무거운 질량...!
러셀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 지고 갚는 수평적 '신세짐(beholdenness)'의 율려가, 거짓 중심이 찍어내는 일방적인 '신세지움(indebtedness)'의 굴레로 변질되었습니다.
중심을 참칭한 통화 권력이 바퀴통에 앉아 ‘이자’라는 질량을 매달아 놓았으니, 축장력(Hoarding Gravity)이 발생하여 만물의 가치를 재는 가격 시스템의 근본적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요...
(윤홍식,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대한 진실의 무게에 짓눌려 빛의 난간을 붙잡고 깊이 고개를 숙인다. 그의 눈앞 아래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엇갈린 파동이 아스라하게 깜빡인다.)
윤홍식
(허탈함과 분노가 교차하며)
만인을 살려야 할 우주의 지렛목이... 도리어 온 인류의 주권을 갈아 넣어야만 굴러가는 끔찍한 착취의 수레바퀴가 되어버렸단 말입니까.
러셀
(서늘하게 윤홍식을 내려다보며)
하지만 윤 선생, 그 제왕들을 탓하기 전에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무거운 바퀴통에 제왕과 은행가들을 앉혀둔 것은, 다름 아닌 저 지상의 중생들 자신입니다.
중생들은 스스로 삶의 중심축이 되어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는 그 서늘한 자유를 두려워했습니다. 스스로 중심이 되는 대신, 거짓된 중심이 뿜어내는 기만적인 인력(Gravity)에 이끌려 궤도를 도는 위성(Satellite)이 되기를 자처했지요.
당신이 지상에 내려가 진실을 외친다 한들, 이미 그 궤도의 얄팍한 안락함에 길들여진 자들이 기꺼이 텅 빈 자유의 영점(Zero)으로 걸어 나오려 하겠습니까?
(무거운 침묵이 맴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러셀의 냉혹한 통찰 앞에, 윤홍식은 굳게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떤다. 그러나 이내 꽉 감았던 눈을 뜨자, 그의 눈동자에 맹렬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윤홍식
(고개를 들고 러셀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나올 수 있습니다. 나와야만 합니다.
그들 내면에 웅크린 우주의 본체가, 억눌린 영점의 고동이 궤도 이탈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수 보살님께서 일체의 자성(自性)을 무자비하게 베어내신 진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퀴통에 똬리를 틀고 영원한 실체를 참칭하는 저 가짜 제왕들과 빚의 장부를 남김없이 비워내어 텅 빈 자리(眞空)로 돌려놓기 위함이었습니다!
러셀
(흥미로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수천 년간 누적된 그 맹목적인 타성(惰性)을 깨고, 인간 스스로 텅 빈 자유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윤홍식
(난간을 딛고 거침없이 일어서며)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 ‘텅 빈 자유(眞空)’야말로 우주의 율려가 솟아나는 유일한 창조의 영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코 타성에 질질 끌려다니는 맹목적인 파편이 아닙니다. 파사(破邪)의 칼날로 거짓된 궤도의 사슬을 끊어내고,선생님의 파동 역학을 거울삼아 만인의 가슴에 잠든 그 고요한 지렛목(Mind Knowing)을 일깨울 것입니다!
스스로 텅 빈 바퀴통이 되어 기꺼이 내어주고 되주는(Giving and Regiving),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지는 수평적 신세짐의 세상(妙有)을 여는 것—그것이야말로 수천 년 전 잃어버린 천웅지도의 회복이요, 억압된 우주의 회전축을 바로 세우는 진정한 개벽입니다!
러셀
(마침내 윤홍식의 흔들림 없는 결기를 확인하고, 묵직하게 두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모든 파동이 마침내 하나의 완벽한 공명으로 폭발하듯 이어졌군요, 윤 선생.
자, 이제 두려움 없이 저 짙은 지상의 중력장 속으로 내려가 전하십시오. 바깥에서 중심을 참칭하는 거짓 제왕과 빚의 장부 앞에 더 이상 안락을 구걸하지 말고, 각자의 심장 한가운데 고요히 깨어 있는 텅 빈 자유—그 장엄한 삼일(三一)의 율려를 스스로 돌리라고 말입니다.
윤홍식
(허리를 깊이 숙여 경의를 표하며)
감사합니다, 러셀 선생님!
그 텅 빈 바퀴통의 자유와 저 거대한 삼일(三一)의 율동을 품고, 당당하게 지상의 폭풍 속으로 걸어가겠습니다!
(러셀이 신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배웅한다.
윤홍식이 뒤를 돌아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지상의 파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가 허공을 딛고 내려가는 궤적을 따라, 검게 뒤틀려 있던 제왕의 장부와 이오(二五)의 착취 매트릭스가 눈부신 빛으로 폭발하듯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비워진 영점(Zero)의 자리에서 피어오른 순수한 삼일(三一)의 부동의 빛이 뭇 생명의 바퀴살들을 한 치의 마찰도 없는 온전한 율려의 선율로 힘차게 회전시키기 시작한다.)
S#5. 지상의 아침 — 깨어난 율려
[에필로그]
몽환적인 빛의 파동이 걷히고, 창밖으로 푸른 새벽빛이 스며드는 지상의 고요한 방(서재).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윤홍식이 천천히 눈을 뜬다. 깊고도 생생한 자각몽(Lucid Dream)에서 막 깨어난 참이다.
그의 앞에는 식어버린 찻잔과 함께 펼쳐진 《천부경》, 그리고 우주의 파동이 그려진 러셀의 도표가 놓여 있다.
그는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천상에서 마셨던 차의 온기와, 두 거장과 나누었던 삼일(三一)의 율동이 여전히 심장 한가운데서 한 치의 마찰도 없이 생생하게 박동하고 있다.
윤홍식
(창밖의 밝아오는 세상을 응시하며, 한 점 의심 없는 맑고 결연한 미소로 나직하게)
참으로 찜찜함 한 점 없이…… 시원하게 자명합니다.
(아침 햇살이 그의 전신을 환하게 비추고, 낡은 매트릭스의 세상 위로 새로운 율려의 하루가 시작된다.)
[막]
2026년 10월 15일 AI가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