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역사물을 다룬 한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도전에 대해 짧은 평을 해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역사학자 한 분이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 “최초의 조선인, 정도전!”
‘조선’이 오기 전에 ‘조선’을 자신의 마음에 선명하게 그리고 사무치게 품고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정도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후천개벽의 세상’을 무엇이라 부르던, 주권국가-종교-인종-이데올로그를 뛰어 넘은 “최초의 지구인”을 뽑으라면, 저는 주저함 없이 미국의 Buckminster Fuller를 뽑겠습니다.
19세기 끝자락에 이 세상에 와서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었던 선각자이자 첨병! — Bucky Fuller!
2.
<우주선 지구호 사용 설명서>의 요지는 "인간은 Brain과 Mind라는 성격이 다른 수단을 통해 Physical 영역과 Metaphysical 영역을 상호 넘나들면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지구호를 운항하여한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Bucky의 눈에 비친 현실은 — 광할한 우주와 지구라는 작은 행성 (우주선 - 인간과 환경)을 이해하고 운영함에 있어, ‘총체적 사고와 안목’을 ‘전문화-세분화'라는 미명 아래 타인에게 위임하고 있고, 이 현실의 결과적 단면은 ‘우주선 자체 (화석연료)를 연료로 태워 운항하고 있는 지구호' 입니다.
이 황당한 ‘일그러짐’의 원인을 Bucky는 소위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젓힌 위대한 해적 (Great Pirates = Sea Venturers)들의 해적질에서 찾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 위대한 해적들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협소한 물리적 공간 (Local)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세계화 (Global)를 추진하게 되었으나, 해적 자신들의 생존과 존속을 위한 정보의 독점 = 비밀주의 그리고 경쟁(자) 파괴라는 부정적 폐단 역시 떠안게 되었습니다.
배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필연적으로 ‘무법자'일 수밖에 없었으며, 귀항선을 가득 채운 향료 및 금은 보화 그리고 탐험으로 획득한 정보는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막강한 권력을 허락하여 육지의 권력을 자신들의 ‘바지'로 만들어 통제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생존과 권력 유지에 필요한 총체적 사고와 안목은 오직 ‘위대한 해적’에게만 허락이 되었으며, 교역과 물류, 선박의 설계와 건조, 운항 기술 등 모든 필요 세부 항목들은 University라는 곳에서 전문화의 이름으로 길러진 인재들을 통해 수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전문화’로 인해 비어 있는 ‘총체적 사고와 안목’의 자리는 사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1) 열역학 제2 법칙, (2) 맬더스 인구론, (3) 다윈의 적자생존이론 등으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Bucky의 통찰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엔트로피 상승으로 인한 ‘아마게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모든 과학기술과 산업은 파괴를 위한 무기류 (Weaponry)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미 현대 물리학과 생물학은 열역학 제2법칙과 다윈주의가 오류임을 이론적으로 입증하였으나, 인류는 아직까지도 위대한 해적들의 유물과 잔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부(富)’에 대한 이해입니다.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던 시절에 Physical 영역으로만 접근하여 내려진 결론(오해) 이었던 열역학 제2법칙의 경우처럼, ‘에너지'를 생각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고갈’을 생각하듯, ‘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결핍’을 동시에 떠올립니다. 당연히 ‘부(富)’란 가능한한 최대한 ‘땡겨서 쌓아 놓아야 할 어떤 것’이 되는 것이죠.
Bucky가 내린 ‘부(富)’에 대한 정의는 다릅니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그러하듯 ‘부(富)’에 대한 이해 역시 진화적 과정 (an evolutionary process)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富)’라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외화된 조율된 능력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종(種)으로서의 건강한 자기재생산을 유지하며,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물리적 (physical) 정신적 (metaphysical) 제약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주어진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Wealth is our organised capability to cope with effectively with the environment in sustaining our healthy regeneration and decreasing both the physical and metaphysical restrictions of the forward days of our lives.”)
‘결핍’이라는 것은 위대한 해적과 그 하수인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범죄적 약탈의 결과에 대한 물리적 표현일 뿐 Metaphysical 영역이 개입되면 그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富)’라는 에너지가 작동하는 장(場)은 ‘無盡場’ 이기 때문입니다.
3.
운영 매뉴얼도 없이 자멸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 지구호.
이에 대한 대안으로 Bucky가 제시한 것은 선명한 정치적-이념적 혁명 노선이 아니라 "무기류 (Weaponry)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환경에 대한 배려와 함께 삶의 수준 향상(Livingry) 쪽으로 사업 추진 동기의 대전환을 이루어 내자”는 것입니다. (From Weaponry to Livingry!) 즉,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일에 항공우주공학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죠.
Bucky는 이를
World Livingry Service Industry라 불렀으며, 이와 관련하여 많은 특허와 디자인 그리고 발명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Dymaxion House입니다. 자동차를 대량 생산으로 공급하듯
집도 대량 생산하듯 공급하자는 발상입니다.
Dymaxion House는 이미 1920년대에 컨셉 설계가 이루어 졌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시범적으로 건축이 됩니다. 자연 통풍, 자연 온난방 등의 에너지 효율 극대화가 적용되었을 뿐만아니라 지진과 허리케인에도 끄덕없는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실내 구조도 쉽게 변경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였고, 대박을 꿈꾸는 이들이 본격적인 사업화를 시도하려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를 하게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 Bucky는 훗날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Make sense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프로토타입으로 make money를 시도한 것 자체가 nonsense 였으며, 모든 것에는 임신(발상)에서 탄생까지의 잉태기간이 있듯이 대량 생산 주택도 사회적 코드, 정책, 모기지를 위한 금융 환경 등 주변 여건이 무르 익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이와 같은 Livingry industry의 출범을 위한 필요 조건들은 머지 않아 충족될 것이다.” (1983)
30년이 지난 2014년 현재 분위기는? 이미 충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