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의 불편함—욕망의 이중적 불일치 문제 및 교환 비율을 결정할 ‘표준’의 부재—을 해소하기 위하여 화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그럴듯한 교과서적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인류학적, 역사적 증거는 아직까지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류학자 David Graeber (1961-2020)는 '물물교환이 시간적으로 먼저 이루어지다가 후에 화폐가 출현했다'는 주장을 뒤집는 근거들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은 여전히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화폐의 출현 이면에 깔려 있는 심오한 형이상학적, 열역학적 의미들을 간과하거나 혹은 애써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정통과 이단을 막론하고, 경제학의 거두들은 자신들의 이론 구축에 무의식적으로 사용된 열역학적, 형이상학적 가정과 전제 외에 일체의 다른 접근과 비유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John Ruskin (1819-1900)은 다음과 같이 꼬집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인간들이 사로잡혀 있는 망상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것은, '너와 나를 가르지 않음'에서 나오는 ‘한마음(social affection)’이 사회적 진보와 발전에 유익한 결과를 낳게 하는 사회적 규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현대 학문은 바로 이 망상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돈 혹은 화폐의 본질은 '힘(力)' 입니다. ‘필요로 하지만(=수요) 지금 나에게 없는 것(富)’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공급) 마술과도 같은 힘입니다. 이는 단순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수요’를 드러내고 ‘공급’을 조직하여 연결 시켜주는 실질적인 소셜 미디어이자 ‘부(富)’라는 ‘에너지 변환과 흐름’을 가속화 시키는 매질로, 오직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현묘한 힘입니다.
이 힘을 통해 인간은 '결핍'과 '고갈'이라는 현상계의 물리적 제약을 뚫고 '무진장(無盡藏)'으로 진입하여, 종(種)으로서의 건강한 자기재생산 유지는 물론,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물리적(physical), 정신적 (metaphysical) 제약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개개인들이 단순 생존(生存)을 넘어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자유로운 존재로 현존(現存)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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